‘육식사회’에서 태어난, 타인보다 섬세한 사람
나는 정육점집 딸로 유년기를 보냈다. 어릴 적에는 육식이나 도살된 고기에 대해 좋다, 나쁘다라는 어떤 개념도 없었다.
하지만 찬 기운이 가득하고 피비린내가 나는, 반으로 갈라진 소와 돼지의 사체가 있는 정육점은 무섭고 불편했다. 부모님의 생계를 위해 나는 그곳에 앉아 있어야 했고, 매일 많은 소고기를 먹곤 했다. 그러나 그곳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이 늘 불안했다.
어릴 적 엄마는 도박에 빠져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등에 나를 업고 도살장으로 갔다. 엄마는 내가 등에 있으니 자신의 머리로 내 시야를 가리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의 머리를 작은 손으로 옆으로 치우며 도살장의 모습을 보려고 했다. 그리고는 자지러지게 울었다고 한다. 아빠 친구는 엄마에게 "애를 데리고 이런 곳에 오지 말라"고 꾸짖었다고 한다. 나는 그 기억이 너무 어려서 기억나지 않는다.
시골에서는 종종 개를 훔쳐가 도살해 개고기로 파는 개장수들이 있었다. 시골을 방문하면 가족 중 어른이 내가 사랑하던 어린 개를 먹기위해 목매달아 죽이는 것을 보기도 했고, 도끼로 사정없이 죽임을 당하는 돼지의 비명을 듣기도 했다. 가족 중 나만 이런 일들에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늘 이상한 아이였다. (나는 도시에서 성장했으며, 시골은 1년에 한 번 정도만 방문했다.)
어릴 적, 개고기를 보며 슬퍼하거나 모피 생산 방식의 잔혹함을 지적할 때면 어머니는 나를 꾸짖으며 “유별나게 행동하지 말라”거나 “그건 네가 부유하지 않아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말들을 들으며 나는 내 감정과 윤리적 사고를 부끄럽게 여겼고, 스스로를 혐오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내가 느꼈던 감정이 타당했음을 깨달았다.
2011년, 해외 동물보호단체 PETA가 올린 공장식 축산업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나는 그날 오열하며 울었고, 이후 동물들이 더는 ‘먹을 것’이나 ‘고기’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날 이후 소, 돼지, 닭 같은 육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지만, 채식하기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종종 계란, 유제품, 해산물 등과 타협해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이상하거나 혼자인 것이 아님을 깨달았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상한 사람들’―이 서양 국가에는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2024년, 한국에서 개 식용 종식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노력한 결과였다. 그러나 여전히 개 도살업자들은 ‘개는 다른 가축과 다를 바 없다’거나 ‘개고기로 사육되는 도사견은 반려견과는 다른 품종이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개만 사랑하는 자칭 ‘동물보호자’들은 ‘개는 다른 동물들과 다르며 인간과 깊은 공감을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존재다’라며 개만은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 두 가지 입장 모두가 종차별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고 느낀다. 왜 어떤 동물은 보호받아야 하고, 어떤 동물은 먹어도 된다는 기준을 나눌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 속에서 나는 여전히 동물들을 보호하고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은 늘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3년 전, 나는 한국에서 여성 혐오와 약자 혐오로 악명 높은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의 '야옹이 갤러리'를 알게 되었다. 그들의 혐오 발언과 집단 형성 속에서, 그중 극단으로 치닫은 사람들이 실제로 고양이들을 고문하고 살해한 영상을 공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가학성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고, 나는 그 영상을 본 뒤 고열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런 끔찍한 행위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 내 영혼이 몸을 떠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후 나는 그 고통을 동물보호 활동으로 승화했다. 동물보호단체 후원, 탄원서 작성, 서명 운동 등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자행된 고양이 고문·살해 단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즐거움과 이익을 위해 아기 고양이들에게 극도의 고통을 가했다. 나는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한국 동물보호 단체의 게시물을 모니터링했지만, 모자이크 처리가 적은 사진과 영상을 본 뒤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두 달 동안 소셜미디어를 중단해야 했고, 지금도 여전히 몸과 마음이 아프다. 그 전까지는 건강한 자연식물식을 실천하며 일상을 즐겼고, 컨디션도 최고조였는데 말이다.
나는 동물을 외면하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려면 영상을 봐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런 영상을 본 뒤 나는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사로잡힌다. 그것이 내 슬픔과 분노와 통탄인지, 아니면 고통받는 동물들의 감정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렵다. 나는 내가 단순히 예민한 HSP(Highly Sensitive Person)인지, 아니면 엠파스(Empath)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현재 나는 미디어를 끊고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며 내 정신을 회복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동물권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나 자신을 지키면서도 어떻게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지 조언이 필요하다. 또한, HSP와 엠파스의 차이를 어떻게 구별하며, 내가 느끼는 심리적·신체적 고통이 나 자신의 것인지 타인의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지 알고 싶다.
나는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서, 동물권 활동을 하는 타인들에게도 도움이 되고자 나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자 한다. 내 경험이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에게 위로와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